중국 성씨 문화의 역사가 유구함은 세계 다른 민족들과 대비해보면 알 수 있다. 터키는 1934년 후부터 姓씨를 쓰기 시작했고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유태인은 성씨가 없었다. 많은 구미 나라들은 중세기 중기부터 성씨가 있었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또는 민족은 지금도 姓씨를 모른다. 일본 서민은 메이지 3년(1870)부터 성씨를 쓰기 시작했다.
1. 中國姓씨 分布
중국 사회과학원이 최근 발간한 '중국성씨대사전'에 따르면 역대 중국에서 사용돼온 성씨는 2만3천813개다. 여기에는 몽고족, 만족, 티베트족, 이족 등 소수민족의 성씨가 4천여개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역사상의 많은 성씨가 후세에 없어졌으며 가장 많이 없어진 것이 한족과 소수민족의 복성이다. 이를테면 한족의 남궁南宮이 남씨와 궁씨로 분할됐다. 여진족의 도단徒单씨는 두杜씨로 변했다. 이것이 동북과 북경에 두씨가 많은 원인이다.
성씨 종류의 확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라 이름을 성씨로 쓴 로魯· 채蔡· 오吳· 위魏· 한韓, 봉채를 성씨로 한 양楊· 굴屈· 풍馮· 종鐘· 범范· 마馬, 지명·방위사를 성씨로 한 동곽東郭· 서문西門· 관關· 구邱· 지池· 도涂, 조상의 명·자·시호 등을 성씨로 한 웅熊· 목穆· 장庄, 관직·작위·재주 등을 성씨로 한 전錢·사史· 수帥· 리李· 사마司馬· 도陶 등이다. 이 외에 소수 민족이 한족에 동화된 사례도 있다. 북위 효문제가 元씨로 개성, 원元나라의 ‘納速拉丁’성씨가 ‘납納·속速·납拉·정丁’ 등으로 변한 것 등도 있다.
지금 중국 한족의 성씨는 도합 3천600가지, 현재 통용되는 성씨는 7,0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중 인구수 랭킹 10위는 리李·왕王·장張·류劉·진陳·양楊·조趙·황黃·주周·오吳이다. 현재 중국에는 비교적 흔한 100가지 성씨가 인구의 87%를 차지하며 중국인구 1%이상을 차지하는 성씨는 모두 19가지이다. 상기 랭킹 10위 외에 서徐·손孙·호胡·주朱·고高·림林·하何·곽郭 및 마马이다. 중국 각 성씨의 분포는 균형이 맞지 않다. 북방에는 왕씨가 가장 많아 인구의 9.9%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李·張·劉이다. 남방은 陳씨가 가장 많아 인구의 10.6%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李·黃·林·張이다. 중간 지대인 장강유역은 李씨가 가장 많아 인구의 7%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王·張·陳·劉이다.
2004년 북경과기보北京科技報는 8일 중국과학원의 발육생물학연구소 위안이다(袁義達) 연구원의 최근 저서 '중국 성씨: 집단 유전과 인구 분포(中國姓氏:群體遺傳和人口分布)'를 소개하면서 "중국 남부와 북부 한족 사이에는 유전자 구조상 차이가 존재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 차이는 인근 소수민족 간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한족 사이의 혈통이 남부 양쯔강(揚子江)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는 속설이 내려왔으나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북 간 한족 차이는 푸젠福建성 우이산武夷山과 후난湖南. 광둥廣東을 가르는 난링南嶺산맥을 기점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중국 한족의 혈액적 친연성은 주로 성씨姓氏를 중심으로 강하게 보존돼 왔던 것이다.
남북 한족 간의 혈통적 차이는 송대宋代에서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아울러 명대明代 이후 남북 한족 분포는 현재 상태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성씨의 역사는 4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족 혈통의 근원지는 중국 서북부와 중북부의 중원中原지역이라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아울러 "한족에 의해 만들어진 성씨도 나중에 수많은 주변 민족이 차용해 쓰면서 성씨 집단의 규모가 커졌다"고 소개했다. 북방 한족은 주변의 흉노匈奴와 선비鮮卑, 돌궐突厥 및 몽골족과 혈연적으로 합쳐졌으며 남방의 한족들은 원래 그 지역에 거주해 왔던 남월南越과 교지交趾 등의 남南몽골족과 피가 섞인 것으로 나타났다.省별 주요 성씨
광동의 량梁·라罗,광서의 량梁·륙陆,복건의 정郑,대만의 채蔡,안휘의 왕汪,강소의 서徐·주朱,절강의 모毛·심沈,강서의 호胡·료廖,호북의 호胡,호남의 담谭,사천의 하何·등邓,귀주의 오吴,운남의 양杨,하남의 정程,감숙의 고高,녕하의 만万,섬서의 설薛,청해의 포鲍,신강의 마马,산동의 공孔,산서의 동董·곽郭,내몽고의 반潘,동북삼성의 우于가 그것이다.
2. 中國 歷代王朝 姓씨
3. 百家姓
북송시대에 편찬한 《백가성百家姓》에는 504개(단성 444개, 복성 60개), 명나라 때 편찬한 《천가성千家姓》에는 1,968개,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간한 《중국성씨대사전》에는 23,813개의 성이 수록되어 있다.
900년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趙錢孫李 周吳鄭王...”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인구수 순위가 아니었다. “조趙”는 북송을 건국한 황제의 성이었고, “전錢”은 당시 가장 힘이 강했던 오월국吳越國의 국왕 성씨였고, “정鄭”은 그 왕후의 성씨였으며, “이李”는 그 다음 강국인 “남당南唐”의 국왕 성씨였던 것이다. 따라서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인구 순이 아니라 예우를 받아야 할 성씨의 순위였던 것이다.
부록: 백가성(百家姓)
백가성百家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최고로 널리 유행한 서당의 교재로 삼자경《三字经》、 천자문《千字文》과 더불어 3대 서당 교재이다. 백가성百家姓은 북송 초기에 책으로 편찬되어 411개의 성씨를 수집하였고 후에 504개의 성씨를 덧붙였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단성은 444여개이고 복성은 60여개다. 《백가성》에서 특이한 점은 첫 마디 글귀가 '(조전손리, 주오정왕)'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보니 이 책이 편찬되던 시기인 송나라 때 황제의 성씨가 (조)씨이기 때문에 '(조)'가 백가성 중에 첫 번째 성이 되었다고 한다
원시적인 백가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돈황의 사본에는 백가성외에 성씨서의 잔본이 남아잇다. 첫구가 “張王李趙”로 시작한다. 한나라 응소의 풍속통의의 성씨편에고 이미 “장왕이조는 화제의 사성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장왕이조가 자고이래로 대성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중국의 4대姓 [劉·李·趙·朱]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국을 통치해 온 유劉·이李·조趙·주朱 4개 성씨를 알면 사실상 중국 역사를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4개 성씨는 현재 2억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 유방과 유비로 유명한 유劉씨
제일 먼저 劉씨 성을 쓴 사람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황제黄帝의 후손인 제요帝尧 도당씨陶唐氏다. 그의 자녀들이 요국을 세운 뒤 후손들은 류刘자를 성씨로 쓰기 시작했다.
유씨가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서한西漢을 세우면서부터다. 류씨가 세운 왕조는 전한,후한, 촉한, 5호16국의 남송南宋과 전조 5대10국의 후한 남한, 북한의 8개이며 여기서 배출한 류씨 성의 황제만도 66명에 달한다. 이들이 통치한 기간은 600여년에 이른다. 이중 서한과 동한 두 왕조에서는 400여 년에 걸쳐 총 29명의 황제가 나왔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유씨 인구는 약 7000만명으로 전국에서 4번째로 많다. 유씨의 시조는 장쑤(江蘇)성 펑청(彭城) 일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바로 이李씨
수많은 왕조 중에서도 이씨 왕조 당나라는 중국의 국력이 가장 강력하고 백성들이 살기 좋았던 시기로 꼽힌다. 618년 이연李淵이 당나라를 건국했고, 이어 둘째 아들 이세민李世民(당태종)이 당나라를 통일한 뒤 ‘정관의 치’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열었다.
또한 서하西夏를 세운 이원호李元昊와 후당後唐을 세운 이존욱李存勖 등 모두 60여명의 이씨 황제가 15개의 왕조를 다스렸다. 이존욱의 부친이 임종 직전 화살 세 개를 이존욱에게 주며 "양(梁), 연(燕), 거란(契丹)의 원수를 갚아라"고 한 유언은 지금도 중국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고사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이씨 인구는 약 9500만명으로 중국 성씨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산둥山東성 일대에서 유래돼 처음엔 이理씨였다가 후에 이李씨로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 한족이 지배한 마지막 왕조, 주원장의 주朱씨
주원장朱元璋(명태조)은 천하를 호령했던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한족이 지배하는 명나라를 세웠다. 그 뒤로 모두 276년간 16명의 주씨 황제가 중국을 다스렸다. 또한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후량後梁을 세운 주온朱溫부터 3명의 황제를 더해 모두 19명의 주씨 황제가 중국의 통치자로 기록돼 있다.
현재 周씨 인구는 모두 1500만명 정도이며 주로 남부지방에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주씨는 희姬씨 기祁씨 자子씨 등이 함께 섞이며 시작한 다원류 성씨로 알려져 있다.
◆ 화려한 중국 문화의 부흥, 송나라를 세운 조趙씨
조광윤趙匡胤(송태조)은 오대십국으로 혼란스러웠던 천하를 정리하고 송나라를 세워 300년 통치 기반을 닦았다. 이어 319년간 18명의 趙씨 황제가 송나라는 다스렸는데, 송나라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하고 번화한 나라로 화려한 중국 문화 부흥을 이끌었다. 현재 趙씨 인구는 2000만명 정도로 중국에서 8번째로 많으며 주로 북방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시山西성 류칭六卿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5. 中國에서 韓國으로 건너온 姓씨
현재 286 여개의 우리나라 성씨 중 130여 성씨가 중국에서 온 성씨라고 하는데 이러한 성씨에는 장張씨, 조趙씨와 같은 약 백 만명이 넘는 성씨뿐만 아니라 독고獨孤씨, 섭葉씨, 마痲씨 등 1,000명 미만과 500명도 안 되는 풍馮씨, 초楚씨도 있다.
6. 中國 稀貴 姓씨
중국 성씨에는 방위나 방향을 나타내는 東西南北左右上下 희귀성씨도 있다. 획수가 가장 적은 일(一)씨 성은 윈난, 쓰촨성의 소수민족인 리수족 성씨로 현재 장쑤, 우시, 상하이, 안휘, 산둥 등지에 분포돼 있다. 가장 긴 성은 한자 10개로 이뤄진 장(藏)족 성씨 '훠얼촨자무쑤타얼즈둬'이다.
동(東)씨 성은 순 임금의 일곱 친구 중 한 명의 후예로 중국 인구의 91%를 차지하는 한족뿐 아니라 몽골족, 만주족, 티베트족도 사용하고 있다. 東씨는 중국 전체 인구의 0.0041%를 차지하고 있으며 푸젠, 장쑤, 허베이성과 톈진시 등 중국의 동쪽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서(西)씨는 전체 인구의 0.0015%로 광둥, 랴오닝 남(南)씨는 0.016%로 허난, 산시, 깐수 북(北) 씨는 내몽골, 허베이, 산시, 쓰촨 등지로 西, 南, 北씨는 성과 분포지 간 상관성은 없다.
상(上)씨는 토가(土家)족 성으로 0.0001%로 광둥, 허난, 산시 3성에 하(下)씨는 안후이성, 좌(左)씨는 전국 인구의 0.078%를, 우(右)씨는 이족 성씨로 충칭시, 후난성 등지에 분포돼 있다.
중국국가지리라는 잡지사에서 중국의 희귀한 성씨를 조사한 결과 요리를 할 때 쓰는 재료인 양념油鹽醬醋米茶으로도 성씨를 쓰고 있었다. 기름 유(油)씨 성은 장쑤성에 7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소금 염(鹽)씨 성을 쓰는 사람은 13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장 등의 장을 말할 때 쓰는 장(醬)씨도 14명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14명 가운데 장두부(醬豆腐)라는 동명이인까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식초를 뜻하는 초(醋, 중국 발음 추)씨도 있었고 미(米)씨와 차(茶)씨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샨시(陝西)성의 한 농촌마을에는 제오(第五, 중국발음 디우)라는 성씨의 집성촌이 있는데 과거에는 第一씨부터 第八씨까지 존재했었다고 한다. 또한 난(難), 쓰(死)자를 성으로 쓰는 사람도 각각 수천 명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중국과학원 조사 결과 나타났다
그리고 4대 희귀성씨로 접(接), 백(伯), 탈(脫), 수(須)가 있다. 이외 모(毛), 강(江) 등도 희귀성에 속한다.
7. 韓國과 中國 姓씨의 차이
한국사회에서 편찬된 족보는 대다수가 본관과 성씨를 이용하여 명칭을 정한다. 남양홍씨南陽洪氏의 경우 본관인 ‘남양’과 성씨인‘홍씨’를 이용하여 『남양홍씨세보』 또는 『남양홍씨파보』라한다. 하지만 중국사회에서 편찬된 족보는 그렇지 않다. 안휘성 동성시로 홍진(安徽省桐城市魯)에 살고 있는 방씨方氏들은 본관이 아닌 거주지의 지명을 이용하여 그들의 족보를 『로홍방씨족보』라 칭하고 있다. 중국족보에서 본관이 아닌 거주지의지명을 족보의 명칭에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중국사회에는한국의 본관제도와 같은 사회제도가 존재하고 있지 않기때문이다.하지만 중국 고문헌을 살펴보면 중국사회에서도 한국의 본관제도와 유사한 사회제도가 존재하였던 시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회제도는 중국 역사상 위진남북조(221~589)시기부터 당나라(618~907)말기까지 크게 성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역사에서는 이를 군망제도郡望制度라 부른다.